부설거사 이야기
부설과 함께 어울려 공부하는 영희(零熙)와 영조(零照)스님이 천관사(天冠寺)에 들어가 두문불출하고 선을 닦았다.
송홧가루에 연꽃열매를 먹으며 5년을 지내고 보니 온 몸에서 솔 향이 가득하고 배속에 낀 티끌하나 보이지 않았다.
영조가 시를 읊었다.
좋은 곳 가리어 깊숙이 살던 곳,
소나무 우거진 산마루 암자였네.
선하다 둘 아닌 도리를 깨달으니
삼승의 구경경지 이름도 기쁘구나.
옥을 캐 놓았으나 아는 이 누구인가.
꽃 머금은 새들만이 지저귀네.
쓸쓸히 세속 일 없으니,
한 가지 법 맛이나 보고 살리라.
영희도 시 한 수를 읊었다.
구름 걷히니 산등성이 드러나
노송에 덮인 암자 달빛에 젖어드네.
지혜의 칼을 천만번 가니
마음속의 물줄기 두세 번 솟구치네.
깊은 골 고요한 봄
산새들은 정답게 노래하네
무상의 즐거움 가슴속에 꽉 차니.
현관에도 참예할 것 없어라.
부설이 노래했다.
그대들과 고요히 빈마음 찾아
구름 학과 작은 암자 살았노라.
이미 둘 아닌 줄 알았다면 둘 없는 곳에 갈 것 없나니
누구에게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을 물을 것인가.
고요한 뜰 가운데 아름다운 꽃들이여,
무심한 창밖에 새소리 듣노라.
바로 여래의 경지에 찾아 들어갈지언정
구태여 오래도록 수행할 것 있겠는가.
우리나라 절에서 부르는 신도들의 명칭이 있다. 여자신도를 보살님이나 보사님이라 부르는데 보살이란 보리살타(보리: 깨달음, 살타:중생)의 준말로 깨달은 중생, 깨닫고자 하는 중생으로 풀이된다. 깨달은중생은 문수. 보현. 관음. 지장 보살님들을 말하고, 깨닫고자 하는중생은 우리들을 일컬으며, 여신도들을 부르는 보사님은 지킬 보(保)절 사(寺)해서 절을 지켜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남자신도들은 처사님이나 거사님으로 부르는데 처사는 속가 마을에 사는남자들을 일컬음이고 거사는 불도를 닦는 속가 남자를 말함이다. 그런데 이 거사들 중에 스님네들 못지않게 수행을 잘하여 세상을 밝힌 분들이 계신다. 대표적인 예로는 인도의 유마 거사, 중국의 방 거사, 그리고 우리나라의 부설 거사가 있다. 우리나라 부설 거사의 삶을 조명하여, 수행이란 스님이나 전문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생활속에 그리고 대중 속에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할 수 있는 것임을 배워보자.
부설 거사는 본래 스님이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사람으로 속가 성은 진씨(陳氏)이고 이름은 광세(光世)요 불국사에 15세 때 출가하여부설이라는 법명을 받게 된다. 전(前)날에 인연이 있었던지, 여법하고도 철저한 수행은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되었다. 함께 어울려 공부하는 도반(道伴)으로는 영희(零熙)와 영조(零照)스님이 있었는데 마음들이 통하여 서로의 힘이 되었다. 지리산 법왕봉에 묘적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솔잎과 칡뿌리로 목숨을 이어 가며 수도를 해 나갔다. 그러나 십수 년이 흘러도 확철대오(廓徹大悟)할 기미가 보이지않자 자리를 옮기려고 마음먹고 오대산 문수도량으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바랑을 걸머지고 북으로 북으로 향하는 그들의 마음은 구도(求道)의 열기로 가득했다. 발걸음은〈두룽 백련지〉라는 곳에 머물게 되고 그 마을의 장자인 구무원의 집에 하루를 머물게 된다. 이 집주인 구 씨 역시 불도를 닦는 거사로서 스님을 대하고 보니 옛친구를 만난듯 반가워 밤새도록 도화(道話)와 법담(法談)의 꽃을 피우게 된다. 아침이 되어 조반을 먹고 길을 뜨려 하였으나 때아닌 비가 세 사람의 발길을 묶어 놓게 되고 그 핑계로 구무원을 포함한 네 불제자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도담의 법열에 노닐게 되었으니 ······.
주인 구 씨는 특히 부설 스님의 세상 보는 깊은 이해와 중생을 생각하는 넓고 따스한 가슴에 고개를 숙였고 그의 뛰어난 사람됨을 아내와 딸 앞에서도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니 모녀 역시자연스레 부설 스님을 존경하게 된다. 주인 구 씨에게는 무남독녀인 묘화(妙花)라는 외동딸이 있었으니 십구 세의 묘령으로 뛰어난 미모에다 재예(才藝)까지 겸하여 인근 총각의 선망이 되고 있었다. 특히 아버지 못지않게 불교의 깊은 경지까지 터득하고 있었다. 과년하여 출가를 시키려 하였으나 근동에는 짝할 만한 총각이 없었음은 물론, 부모들이 걱정을 하면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혼인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결혼 얘기가 나오면 부모님 말씀을 존중하겠으나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하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였다. 모든 것이 인연의 소치일까? 부설과 마주치게 되고 묘화는 첫눈에스님에게 반하고 말았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부설의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묘화는 야무진 마음으로 부모님 방을 찾았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부설 스님에게 시집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무슨 청천의 벼락 같은 소리인가!
멍하니 앉아 있는 부모님에게 또다시 부설 스님과 결혼하게 해 달라고 청했다.
정신이 든 어머니는 묘화를 설득했다.
「얘야! 네가 정신이 있는 아이냐? 부모형제 버리고 스님이 된 분인데 장가를 들려면 애초에 왜 스님이 되었겠니. 그런 죄받을 소리는 하지도 마라.」
그러자 묘화는 결연하게 대답했다.
「어머님 진심이에요. 그리 안 된다면 저는 죽을 수밖에 없어요. 불법은 자비로서 근본을 삼으니, 말씀이라도 드려 주세요.」
말하는 묘화의 입가에는 굳은 의지가 서려 있었다.
묘화의 뜻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아버지 구무원은 스님들이 계신 방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올겼다.
「스님 제 딸을 살려 주시오!」
머리 허연 주인 구 씨가 부설 스님 앞에 무릎 꿇은 채 통곡을 했다.
어리벙벙해 하는 부설 스님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곁에서 듣고있던 영화. 영조 두 스님은 펄펄 뛰었다.
「이런 모욕이 어디 있는가. 우리를 어찌 보고 이런 수작을 하는가.」
조용히 듣던 부설이 온화하나 서릿발 같은 말로 단호히 거절했다.「석가부처는 아내와 자식, 태자의 자리마저도 버렸소. 있는 것마저버려야 하는 것이 사문의 자리일진대, 어찌 취해서는 안 될 것을 취하라 하시오.」
「스님, 제가 왜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죽어 가는 목숨을 살리는 것 또한 부처님의 자비가 아닐는지요. 딸년이 죽는다면 우리 내외, 무슨 낙으로 살아가겠소. 세 사람의 목숨을 살려 주시오, 세 목숨을.」
불법을 모르는 구무원이 아니었으나 딸을 생각하니 물러설 수가 없었다.
「스님 부처님께선 개미 한 마리를 위해서라도 무량고를 받으라 하시었소. 우리 세 목숨을 저버리지 말아 주시오.」
옆 방에선 딸아이의 운명이 어찌 될까, 걱정하는 늙은 어미의 한숨과 묘화의 애절하고 가녀린 흐느낌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부설의 요지부동한 마음에도 파문이 일었다.
계(戒)가 수행의 요체이나 생명구제 또한 수행자의 목적이다.
계도 파하지 않고 생명도 살리고 둘 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단 말인가.
그라나 물과 불의 관계 같은 모순일 뿐이다. 계를 지키려면 세 생명을, 세 생명을 지키려면 계를 버려야 하는 양자 택일의 입장이었다.
부설은 하루 더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하였다.
하루 동안 부설은 냉정하고 조용하게 자신의 영혼 속 진실한 소리를 들어 보았다.
〈계도 중요하고 생명도 중요하다. 그러나 계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방법이요, 수단이다. 육바라밀 중에 자비보시가 으뜸이라 하였으니, 내견성오도는 다음 생으로 미루더라도 세 생명을 살리자.〉
부설은 마음을 정리하였다.
〈수행이란 진정 하고자 하는 마음에 있는 것이지 모양이나 방법에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머리를 기르고 아내를 얻어 환속할지라도 흔들림 없는 도심으로 닦아 나간다면 부처님의 근본 계율에 어긋나지않으리라.〉
아침이 되어 쾌히 장가 들겠다는 부설의 말에 희비가 엇갈리게 되니 구무원의 식구들 얼굴에는 환천희지(歡千喜地)의 웃음이, 영희.영조 두 스님에겐 먹구름의 비애가 드리워졌다.
세월이 흘렀다.
아들 등운과 딸 월명을 낳고 장모, 장인도 세상을 떠났다.
아내도 자신도 초로의 중늙은이의 모습이 완연했다.
부설은 인생 무상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그 동안 해 온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고 아내와 상의를 했다.
「여보! 우리가 전생의 인연으로 이렇게 부부되어 행복하게 살았소.이제는 전생에 맺히고 빚진 인연도 서로 풀고 갚게 되었으니 각자의 일을 하도록 하십시다. 당신은 가솔들과 남은 인연들을 책임져 주시구려. 내 환속하여 당신의 뜻을 따랐으니 남은 생은 당신이 나를 위해뜻을 따라 주구려.」
「여보, 고마워요! 당신과의 함께 지냈던 세월,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이제부터 아무 걱정 마시고 공부에 전력하세요.」
부설은 그때부터 병을 핑계로 외부 사람들과 왕래도 끊고 뒤뜰에초당을 지어 수행정진을 하게 되었다.
멈춤 없는 세월은 유슈와 같이 흘러갔다.
부설과 헤어진 영조와 영희 두 스님도 오대산 문수도량을 비롯한명산대찰을 다니며 저명한 고승들을 두루 친견하여 오도(悟道)의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큰스님들이 되어 부설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세 스님의 반가움은 말할 수 없었지만 부설 스님, 아니 이젠 환속하여 거사가 된 부설을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 두 스님에게 은연중 나타났다.
묘화. 부설 부부, 등운, 월명 그리고 영희, 영조 스님, 여섯 사람은공양을 마치고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 동안 공부한 얘기들을 하다가 묘화가 물병을 세 개 가져 오더니 대들보에 매달고 부설, 영희, 영조에게 말했다.
「신통 묘용(神通妙用)이란 물 긷고 빨래하며 잠 잘 때 자고 배고플때 먹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도통(道通)은 나보다 여리고 못난 중생을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 저의 집 거사(부설)가 처자식을 돌보느라 깊은 공부는 못 했지만 도심을 버리지 않고 정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 분 여흥으로 달아 맨 이 물병을 막대기로 쳐 보십시오. 깨져서 물이 쏟아지면 공부가 아직 모자란 것으로 알겠습니다.」
먼저 영희가 병을 치니 병이 깨져 물벼락을 맞고 말았다. 영조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설의 병도 깨져 산산 조각이 났지만 물은 얼음처럼굳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부설은 조용히 말을 했다.
「허깨비 같은 몸뚱이가 생멸(生滅)을 따라 변해 가는 것은 병이 부서지는 거와 같고 불성(佛性)이 본래 생멸(生滅)없어 상주(常住)하는것은 물이 허공에 매달린 것과 같습니다. 스님 두 분께선 명산대찰의 고승들을 찾아 다니며 생사 없는 이치를 아셨지만 (知無生死), 생사 없음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용무생사(用無生死)에는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비록 산을 버리고 속가에 묻혀 있었으나 삶 속에 생사를 녹여 쓰는 공부를 하다 보니 병은 깨져도 물을 매달려 있는 용무생사의경지를 익힐 수가 있었습니다. 도(道)란 승속을 가리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도심을 잃지 않는 곳이 승이요, 도심이 없는 곳을 다만 속이라하는 것입니다. 스님이 도심을 잃으면 속인만도 못한 것이요, 속인이 도심을 가지면 그가 곧 스님인 것입니다. 부디 이 소중한 인연 잊지말고 세세생생 좋은 도반되어 보살도를 닦읍시다.」
말을 마친 부설 거사, 아니 부설 스님은 그대로 열반에 드니 두 스님은 무릎 꿇고 절을 하며 식솔 또한 동참하여 염불을 했다.
방에서는 그윽한 향내가 진동했고 하늘에선 우담바라 꽃비가 내렸다.
지리산 묘적암에 사십구제를 지내니 호남 일대의 선비들과 각 사찰의 대덕스님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그의 자비행과 도행을 칭송했고 부설 거사를 부설 대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아들 등운과 딸 월명도 머리 깎고 스님이 되니 등운은 계룡산에 등운암을, 월명은 부안 변산에 월명암을 짓고 수행하여 훌륭한 스님들이 되었고, 묘화는 자택을 부설원이라는 절로 고쳐 수행하다 백이십 살에극락왕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