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 자라며 초등학교를(56회) 다니던 내고향 여산!
적어도 한달에 한번 이상은 가는데 죽어라 가꾸기만 하고 즐길 여유도 없이 분당집으로 올라 오지만, 기쁨으로 충만해서 돌아오게 되는 여산의 내고향집!
20년도 넘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번도 여산이라는 곳에 대한 역사를 적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별로 보잘 것 없는 고향 여산이지만 간단하게나마 자료들을 모아 포스팅 해 둘까 한다.
춘향전에서 어사일행이 한양에서 남원을 향하는 4일째 공주, 5일째 여산에서 머무르며 두패로 나누어 남원으로 모이기로 한다는 장면이 나온다.
여산은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흔적으로 신막 유적이 있고 한반도 최초의 논농사 시배지로 마전리 유적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호남의 의병들이 여산에 집결하고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는 모의청(의병청)이 설치되었으며 3.1만세운동 때는 전북지역의 진앙지로 충효와 지조의 지역이었다.
단종의 정비인 정순왕후의 고향이고 근대역사의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여산은 우리나라 국악의 중심고을로 김성옥, 송광록, 송홍록, 신만엽, 정춘풍, 정정렬 등이 여산 출신이거나 여산에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가람 이병기 박사를 현대시조의 태두로 한중록을 비롯한 고전들을 발굴했고 정사섭 시인은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의 에스페란토어 시집을 펴냈다고 합니다.
이화전, 김대갑전, 순군부군청기의 무대, 춘향전, 난중일기, 김삿갓의 일화 등에 등장하는 예향과 문향의 고장입니다.
종교 성지로 김대건 신부가 처음 입국한 나바위 성지가 있고 천호성지, 숲정이 성지가 있습니다 한 마을에서 세명의 주교가 나온 것은 유래가 없다고 하네요.
* 여산의 역사
여산군(礪山郡)은 1914년까지 지금의 익산시 여산면을 중심으로 낭산면, 망성면과 논산시 연무읍 남부에 있던 지역이다.
여산현은 본래 백제의 지량초현인데, 신라에서 여량현으로 고쳐 덕은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낭산현은 본래 백제의 알야산현이었는데 신라에서 야산현으로 고쳐 금마군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낭산현으로 고쳐 모두 전주 임내로 하였다. 공양왕 3년(1391년)에 두 현을 겸감무로 하였다가 우리 왕조의 공정왕(정종 (조선)) 2년(1400년)에 낭산을 여량의 속현으로 하였으며, 태종 4년(1404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정종 (조선) 2년(1400년)에 여량(礪良)과 낭산(朗山)의 두 현(縣)을 합하여 여산현(礪山縣)이라 했는데, 여량 지역에 삼한 시대 마한의 여래비리국이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종 18년에 군으로 승격되어 충청도에 소속되었다가 세종 26년에 전라도로 복귀되었다.
여량 지역은 구석기 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는데, 숯돌이 많이 나와서 숯돌산(只良肖-礪山)으로 불렸다.
1963년 1월 1일 육군훈련소 설립으로 인해 황화면 전역이 논산군 구자곡면과 함께 논산군 연무읍으로 통합되어, 충청남도로 행정구역이 이관되었다.
* 여산의 명소
가람문학관, 여산향교, 이회효자각, 여산초등학교, 여산동헌, 백지사터, 여산성당, 숲정이성지, 배다리, 남원사, 여산송씨
제각, 황화정, 봉곡서원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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