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음악과 시

木馬와 淑女

yoonwoonam 2008. 4. 8. 12:03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숙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고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어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雜誌)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서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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