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이 태액지에 연꽃 구경을 갔다. 모든 사람들이 연꽃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누군가 현종에게 연꽃이 정말 아름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현종이 양귀비를 가리키며 답했다. “연꽃의 아름다움이 어찌 말을 알아듣는 이 꽃만 하겠느냐(何如此解語花 耶)." 이후 해어화(解語花)는 품격 있는 미인을 칭송하는 말로 쓰이어져 왔고 나중에는 기생까지 아우르는 말이 되어졌다.
외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의 성숙함이 참된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앓음 다움’이다. 앓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아픔과 고난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 더 아름답다. 갈등과 번민, 고통과 시련의 세파 속에서도 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아름답다. 눈물보다 고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상처를 치유하는 순결한 새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둘째는 큰 양이다. 한자의 아름다울 미(美)는 양(羊)자 밑에 큰(大)가 붙 어 있다. 양은 유목민의 삶의 터전이기에 그들에게는 큰 양을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것은 없다. ‘양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주인의 흐뭇함‘, 이것이 곧 아름다움이다.
셋째는 ‘알다(知)’이다. 아름다움은 ‘알다(知)’라는 동사에 ‘-움’이라는 접미사가 붙어서 생겨났다. 아는 것이 아름다움의 본질이 된다는 것이다. 사물의 본질과 이치, 도리를 제대로 아는 것, 곧고 지조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성형미인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외형적 아름다움을 많이들 추구한다. 그러나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적 성숙을 통해서 만들어 진다.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화장이 아니라 맑은 영혼 이다. 영혼을 맑게 하려면 말과 생각을 맑게 해야 한다. 불평의 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인격을 모질고 황폐하게 만든다. 하루 한 번씩이라도 좋은 생각과 고운 말을 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새 내면이 맑게 정화가 되고 아름다운 모습이 저절로 몸에 배게 된다. 가슴에 꽃을 품어야 얼굴에도 꽃이 나타난다.
<황태영님의 글>
'글 >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찌그리~ (0) | 2013.01.21 |
---|---|
살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0) | 2012.12.03 |
리더를 망치게 하는 일곱가지... (0) | 2012.10.26 |
칭찬 (0) | 2012.09.26 |
무재칠시 (0) | 2012.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