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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과 나

yoonwoonam 2015. 5. 8. 12:30

 

오늘 카스토리에서 난이름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그렇게 많이도 좋아했던 난과의 인연에 대해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내 어렸을적은 여산이라는 시골에서 자랐지만 아버님께서 장남이어서인지 어디를 다니실때면 항상 나를 데리고 다니시는 바람에 많은 것들을 볼수있었던 것 같다.

여산이라는 지역이 어렸을적에는  서울을 오가는데는 지금보다는 다른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웠다. 당시에는 고속도로라는게 없어서 전라도쪽 차들은 국도 1호선이 지나는 여산을 통해서 대전이나 공주, 천안을 거쳐서 대부분의 차들이 서울을 가곤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국민학교때에 누나가 서울로 진학을 하기전 그보다 더어렸을적부터 이모, 외삼촌을 비롯한 어머님 형제들이 살고 계셔서 여러번의 서울 방문 기회가 있었다. 그중 할머니 조카인 분이 남대문시장에서 당시 한국에서는 최고일정도의 제법크고 거의 유일한 난가게를 하고 계셨었는데 아버지와 함께 몇번의 방문이 있었던것 같은데 내감성적인 성향이 있어서도였겠지만  갖10여살 먹은 내가 본 길러지고 가꾸어진 란은 충격 그자체였다.

아무튼 그 이후로 나는 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카메라를 장만해서 매년 열리는 난 전시회에 다니면서 구경도하고 사진도 찍고하며 난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80년대 중반쯤에 우리나라에 서양란이 처음들어오고 난 배양을 천안에 있는 연암축산 원예전문대학의 난실에서 시작해 대중화 될때 쯤에는 주말마다 학교 난실에 가서 살다시피 하면서 난과 나의 사랑은 절정을 이루게 되었던것 같다.

지금은 흔해졌지만 당시의 서양란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난(꽃)들에 비해 화사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았고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았었다.

당시에 동양란보다 큰잎에 화사한 큰 꽃을 피우던 심비디움, 조그마한 땅잎에 줄기가나와서 6개월까지도 꽃이 피어있던 팔레노프시스(호접란), 노란 나비같은 꽃을 많이도 피우던 온시디움, 그외에도 덴파레, 카틀레아, 덴드리움 등등이 생각 난다.

그때 기억을 되살려 대표적인 사진 몇장 올려본다.

 

<심비디움 그레이스켈리>

<팔레노프시스(호접란)>

<온시디움>

<카틀레아>

<덴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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