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일찍 잠이드는 바람에 중간에 깨서 오씨앤 무비에서 "졸업"이라는 영화를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1960년대 작품을 리마스터링해 재 개봉한 작품으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데뷔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기성세대에 억눌린 젊은 세대의 답답한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이 영화는더스틴 호프만과 캐더린 로스가 주연하고 영화내내 사이먼 가펑클의 음악이 흐르며 사회 초년생 벤지민의 좌충우돌 방황하는 모습이 여러 생각들을 떠오르게 했다.
이 작품에서 마이크 니콜스는 시각적으로 풍부한 표현력과 더불어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을 조화롭게 결합시키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졸업〉은 1960년대 후반 미국 사회의 반문화적 공기를 영화에 흡수하며 미국의 새로운 영화를 이끈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메타포는 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벤자민은 자신의 방에 멍하니 앉아 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수족관이 보인다. 이 수족관 속 물고기는 벤자민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광활한 바다나 강이 아니라 수족관에 갇혀 주인이 주는 먹이를 먹으며 평온하지만 답답하게 살아가는 물고기의 처지는 벤자민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실제로 마이크 니콜스는 수족관을 앞에 두고 그 뒤로 벤자민의 얼굴을 잡는 방식 등을 통해 그가 수족관에서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졸업〉에서 이러한 물의 메타포는 벤자민 집의 수영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이크 니콜스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그저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는 존재처럼 벤자민을 반복적으로 묘사한다. 튜브 위에 누워 있는 벤자민에게 던지는 아버지의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벤, 뭐하고 있니?” 이 질문은 단지 아버지가 벤자민에게 던지는 질문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던지는 질책이기도 하다.
〈졸업〉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젊은 세대의 방황과 답답한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졸업〉은 무표정한 벤자민의 모습으로 시작해 동일한 표정의 벤자민과 일레인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속 벤자민에게는 아무런 표정이 없으며, 이는 기성세대가 제시한 방향에 순종하며 살아온 벤자민의 생기 없는 삶을 상징한다. 즉, 벤자민의 무표정한 얼굴은 당시 젊은 세대의 억눌린 답답함, 그 자체인 것이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은 욕구로 충만하지만 그것을 실천할 자신은 없다.
〈졸업〉은 그 나약함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청춘에 대한 영화다. 결혼식장에서 도망치는 일레인에게 로빈슨 부인은 “너무 늦었어”라고 경고한다. 일레인의 대답은 “제겐 아니에요”이다. 이처럼 〈졸업〉은 기성세대가 둘러친 울타리에서 탈출하는 젊은 세대의 해방감을 보여주며 끝맺는다. 하지만 정작 그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해방감만이 아니다. 그들은 수족관에 길들여진 물고기였고 그곳을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것이 그들에게 해방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찾아든 이유이자, 한참이나 즐거워 웃어젖히던 벤자민과 일레인의 표정이 굳어진 이유이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결혼식장에서 예식중인 일레인을 벤자민이 데리고 도망치는 장면이다. 과연 이모습이 열정일까? 나도 그렇게 살면 열정을 잃지않은 사람이 되는걸까?
영화는 영화일뿐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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